금서면 민원실 농지원부 발급 받을려고요. 주민등록증 주셔요 집전화기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다 얼굴엔 표정이 없다 저 여직원 거울 볼 때도 안 웃으려나. 아님 웃으면 돈이라도 드나 아냐. 이곳은 이승원이 기한 넘긴 고지서 가지고 간 사강우체국이 아닐러라
꿀벌 속 세상보기 벌은 나는 게 아니다 돌팔매질 이다 허공에 콩알이다 벌통에 사뿐 내리면 벌 된다 뒷다리에 노랑, 연분홍 가루 달기도 하고 배 볼록 꿀도 머금어 오고 어떤 놈 하릴없이 날개만 떨기도 하고 빈둥빈둥 거닐기만 하는 놈도 있다 그러다 낮선 객 기웃대면 냅다 침 한 대 줄 창 노는 놈도 죽어
그 사람 늦둥이 사내였다 초롱초롱한 눈매 개구쟁이, 늦은 희망이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인정하지 못한다. 목소리 높여 시정하라 외친 것 족쇄되어 찾는 곳마다 밀려나 지리산 중턱에서 통나무 친구 되고 하천정비, 도로개설에 땀 흘렸소. 어린애들을 가르치고 문화 활동도 부지런 했소 무엇하나 마다하지 않고 부닥쳤나이다.
그 분 제대로 된 더위가 오기도 전 겨울을 겁낸 그 분은 초립을 겨우 면하고 황급히 훌쩍 떠났습니다 그 분을 본 것은 작디작은 흑백증명사진 뿐 머리에 흰 눈 인 할미는 그의 무정을 지금도 나무랍니다 바람막이도 멘토도 하기 싫었나 봅니다 그런 그 분을 선택이 막아서거나 답이 보이지 않으면 그 분이라면 어쩔까
곶감농사 감을 깎았다 여름 가뭄으로 중부지방은 제한급수를 한다는데 초겨울인 날씨답지 않게 연이은 비로 질척댄다. 곶감건조장에는 선풍기를 돌리고 환풍기를 틀어도 퉁. 철퍼덕. 떨어진 감 쓸어 담기가 일과다 엊그제는 한 접을 담아내고 어제는 두 접을 담아버렸는데 오늘은 셈이 불가능해졌다 곶감농사 많이 하는 덕산에 전화를 했더
고향 마을 하루 해님이 이불속 나서기도 전 육순 안 된 아낙네 약 쓸려도 없는 마을에 아낙들 왁자지껄 소리 선약된 인력시장 이다 정적을 가로질러 달려온 덮개 차 지나간 후 어슬렁어슬렁 고양이 논두렁 거닐고 서리 지붕에 인 남정네 한두 명 사립문 나설
고사리를 꺾다가 가지런히 잘 자란 풀 속 쏘옥 올라온 고사리 탐스럽고 부드럽다 작년에 무성히 자랐던 뻣뻣한 고사리 대에 짓눌린 고사리 나무보다 더 빳빳하다 그 눌림 벗어나고야 고유의 그 부드러움 다시 되살아난다. 억눌릴수록 단단해지는 그 성질은 무엇에서 받았을까 누르면 틔는 고유의 본성일터 살아있는 모든 것의
경계인 호적부 일본이나 단기연호 서기로 바꿔 필사할 시절 다섯 살 이나 적게 호적 등재된 딸애 나이 고쳐 증명 발급해달라는 고향 선배 ‘그건 할 수 없는 일입니다’하자 몇 번 사정하다 하는 말 ‘면서기 대대로 해 먹어라’했다 실수와 고의의 경계를 몰라서였을 게다 사업자 선정에서 공사감독에서 직원인사
거울을 보다말고 하루 일과에 찌든 몸 머리 뒤숭숭 할 때 해결되지 않는 고뇌가 엄습할 때 거울을 보면 어머니 얼굴이다 즐거움에 겨웠거나 억지로 라도 웃어 볼 양이면 거울에 어머니 얼굴이 없다 한 생애 내내 불효한 탓이다
가족애 없인 TV화면 아프리카 어느 바닷가 열 살, 몸 불편한 아이 그물 당긴다 일당 1달러 아비 도망간 다섯 식구 가장이다 제대로 된 복지라는 말 찾기 어려웠던 가족만이 등이었던 시절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 요란 떨었다 이제 겨우 복지란 말 뜸 들이는 어귀 조부모, 가족이란 생각 네 명중 한 명, 호들갑
가시 번개가 치고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어머닌 강 건너 쌀 방아 찧으러 가셨습니다. 물이 불어 나룻배 못타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는 학비 걱정은 해도 어머니 용돈 걱정 해본적은 없었나 싶어 아이들 먹거리 옷가지는 보여도 어머니 먹거리 옷가지 걱정해 본적은 없었거니 보릿고개
TV화면과 밖 TV에 아나운서는 누렇게 익은 들판 비추면서 추석 맞아 고향 찾은 자녀 차량에 고향 정이 듬뿍 담긴다, 침이 마르고 소란스럽게 들썩이던 청춘이 휩쓸고 간 뒤 논가에 나가 앉은 팔남매 둔 팔순이 훌쩍 지난 아낙 듬성듬성 서 있는 피 보고 신을 벗을까 말까 망설이다 되돌아선다. 전답 한 번 안 둘러보고 외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