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어느 날 늙은 목련나무 밑에 앉아 겹겹이 포개 입은 꽃 속으로 들어간다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을 들어 올리는 목련꽃 힘에 부친 탓일까 손에 들었던 치맛자락 휘청 달갑지 않은 황사 탓에 얼룩진 꽃잎들 너덜너덜 찢어진 치마처럼 벗고 있다 차마, 어찌할 수 없는 일 거무죽죽한 살갗들, 땅바닥 뒹굴다 여기 저기 버려진
목련 연가 병상에 앉아 거울 보시던 울 엄마 딸 온다며 붉은 연지 꺼내어 입술 바르시고 목련꽃처럼 환하게 앉아 창 밖 바람을 불러 들였다 올 때가 됐는데 차가 많이 밀리는 갑다 벌써 저녁때가 다 됐네 혼자서 묻고 답하고 그러다 슬며시 돌아 누우셨다 이 핑계 저 핑계 며칠 만에 찾아가면 반가워서 울다가 섭섭해서 울다가
벚꽃 아래서 햇살 받치고 서 있는 벚나무 제 모습에 취한 꽃잎들 가로등 밑 왁자지껄 모여든 나비 떼처럼 팔딱거리는 연한 날갯짓 견딜 수 없다며 꽁무니바람 보다 더 흔든다 휘청거릴 때 마다 온몸 흔들어 주는 벚나무 갈 길 알아버린 꽃잎들 뛰어내리다 넘어지고 뛰어내리다 넘어지고 낙화암 뛰어들던 삼천궁녀 몸짓 저랬을까 제대로 피
후레지아 그런 기쁨이 있었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속내 감출 수 없는 살가운 속삭임 안으로 보듬는 따뜻한 미소 서로가 느끼는 소통 같은 것 초록이 밀어내는 내면의 소리 왠지 눈물이 난다 후레지아 노란 꽃망울 생의 열망 같은 것, 내게로 온 뜨거운 가슴이 지금 막 눈 뜨려한다 꽃망울 파르르 떨릴 때 하늘의 새소리 묻어나고
나룻배 몰아가듯 비틀어진 잔가지 툭툭 틀며 일어서는 제법 튼실해진 벚나무 어깨 척척 걸친 채 가지 열고 나오는 새순들 거기에도 길은 있어 제 자리 찾기에 바쁜 봄날 한바탕 바람이 소리 지르자 맨 처음 하는 몸짓인양 설렘에 떨고 있구나 물결이 나룻배 몰아가듯 사는 날 동안 흔들려야 산다는 통제할 수 없
묶인 배 저 힘에 잡혀 설마 하는 저 작은 힘에 붙잡혀 몸 어루만지는 물결에 한바탕 뒹굴고 싶은데 그 물결 데리고 끝없는 유랑하고 싶은데 자유 박탈한 저 힘을 어쩔꼬 나 놓아다오 결박 풀어다오 배 밀기는 나의 힘 감각은 살아 지구 밖으로 갈 것이다 갇힌 생각이 알지 못했던 그대 먼 하늘로
눈은 내리고 나 네 발가진 짐승 되어 흰 눈 뒹군 설원에 함께 뒹굴고 싶다 눈빛 맑은 사슴이나 노루새끼라면 풍경 또한 얼마나 순할까 잿빛 하늘이 감싸 안으니 얼마나 포근할까 남겨져도 지워져도 좋을 발자국 몇 개쯤 흔적으로 남아도 좋겠다 모든 것 지워진 세상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면 너무 심심할까 야성에 길들여진 들개라
동백꽃 유감 벌린 입 미처 다물지 못한 채 한세상 마감하는 꽃송이 그 중 유독 붉고 작은 입술 하나 무어라 할 말 있다는 듯 내 발길 붙잡는다 허리를 굽히라 더 낮추라 그래야 들을 수 있는 저들의 소리 살만한 세상 아주 잠깐 한 몸의 지체였던 순간들이 절정이었다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 사랑스러운 입 그 고백 외면하지 못해서
봄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그 자리엔 막 구겨진 종이처럼 너가 서 있다 너 섰던 그 자리 콜록거리며 지나가는 바람 한 소절 바람이 훑고 간 텅 빈 자리 아직 겨울나무로 떨고 서 있는 너의 그림자 비에 씻기는 얼굴이 차갑게 느껴지는 밤 비라는 이름을 가진 낱낱의 몸짓들은 무너져 내
두만강에서 구겨진 표정 수습하지 못하는 강 앞에서 반가워 어쩔 줄 몰라 목소리 흘려보지만 제풀에 놀란 물결만 뒷모습 보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하는 것 본다 내 속에서 깨지는 물무늬 저들은 어디서 어디로 바삐 가는가 가서 돌아오지 않겠다며 울먹이는 강 한세상 얼룩진 기억이 있다 강의 물살보다 더 빠른 시간의
장백폭포쩌렁쩌렁천지 뒤흔드는 소리직립으로 일어서서풍경을 찟는다시퍼렇게 질린 나무들오금 저린 바람 오도 가도 못한 채부동자세다귀 열어 놓은 하늘마음 닦은 돌멩이들거침없이 쏟아놓는훈계의 말씀숨죽이고 듣고 있다울음이 울음을 키운소리로 천년따끔하게 경(憬)을 치신다백두대간 찰지게 꾸짖으신다▶시작 노트백두산에 있는 장대한 폭포, 비룡폭포라고도 부른다. 물살이 빨라서 먼 곳에서 보면 하늘을 오르는 다리를 연상하게 하여 ‘승사하’라고 부르며 개활지를 통해 흐르다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어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진다. 36m 아래
천지에서 아무도 몰래 청잣빛 하늘 한 귀퉁이 이름 없는 구름 한 조각 떼어내어 다듬지 못한 빈 잔 채웠습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자리 天地間 눈 시린 햇살 길 잃은 시간들, 그들이 내 잔을 채웁니다 주인 알 수 없듯 형체도 알 수 없는 서러운 바람소리 심장에 박히는 은장도 그런 밤이면 눈썹달 마주보며 취합
백두산 자는 듯 죽은 듯 태연하게 누워 한 세상 꿈이라도 꾸시는가 낮달 하나, 난파선처럼 떠다니는 하늘 바다 위 구름송이 따로 또 같이 몰려다니는데 정녕, 들을 말 없는 듯 입 닫고 귀 닫은 채 천년 꿈틀거릴 때 마다 속울음으로 만년 가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 그 뒤의 일은 아무도 모른 채 갇힌 세월 속에 애간장만
‘오녀산에 솟는 해’ 오녀산정 뚫고 오르는 아침 해 속에 세발까마귀 날갯짓하며 푸들푸들 날아오른다 고구려의 심장 오녀산 비류수강이 굽어보이고 먼 산맥들 일제히 환호성이다 바람도 쉬 오르지 못하는 병풍절벽 허리 굽은 노송은 주몽의 사람들 기억이라도 할까 웅대하게 펼쳤던 민족의 혼 광활한 만주벌판 달리던 말발굽 소리 아득하여